두륜7대(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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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7대(臺)

두륜산의 일곱 대(臺)

두륜산에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일곱 개의 대(臺)가 있다는 기록이 『대둔사지』에 전한다. 그곳을 하나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①능허대(凌虛臺)

『대둔사지』에는 능허대를 "가련봉의 정상이다. 70~80명이 앉을 수 있는 대반석(大盤石)이 있고, 3면이 병풍처럼 되었다. 오직 남쪽에만 바람이 통한다."고 기록하고 있다.『죽미기』에는 가련봉을 비로봉이라 기록하였다.

능허대에 오르는 길은 북암에서 오심재를 거치는 경로(30여분소요)와 만일암터에 위쪽으로 곧바로 오르는 경로(20여분 소요) 두가지가 있다.

먼저 북암쪽으로 오르는 길을 택하면, 좌측으로 월출산, 흑석산, 주작산과 강진이 구강포가 종망되고, 우측으로 도솔봉에서 혈망봉에 이르는 능선과 멀리 진도가 보인다. 이곳으로 오르면 평평한 너덜바위로 이루어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오를 수 있다. 그리고 정상 바로 아래에 쇠사다리와 동아줄이 설치되어 있어서 사람들의 등반을 도와준다.

그리고 만일암터 쪽으로 오르는 길은 금강너덜의 상단부를 지나 왼쪽으로 접어들면 정상으로 오를 수 있다. 여기도 북암 쪽의 경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등반을 도와주는 동아줄이 걸려있다. 능허대 정상의 남쪽 면으로, 비가 오면 배수가 될 수 있는 홈이 파져 있다.

②백운대(白雲臺)

『대둔사지』에는 "두륜봉의 정상이다. 2개이 바위가 마주 대하여 서있고, 그 사이는 10여보이고 높이는 백인(百忍)쯤 된다. 그 위로 바위 하나가 가로놓여 다리가 디었다. 나이가 적고 건강한 사람만이 다리 위를 걸을 수 있다. 항상 흰 구름을 삼켰다가 토(吐)하므로 백운대라 하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사지의 기록처럼 여기를 두륜봉의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다. 다만 두륜봉의 정상부위에 해당된다.

백운대에 오른 길은 만일재를 거치는 경로(15분 소요)와 진불암으로 오르는 경로(30분 소요), 두 가지가 있다. 만일재로 오르다보면, 정상 못 미쳐서 쇠사다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진불암으로 오르면 동아줄에 몸을 의지해서 오를 수 있다.

그리고 진불암으로 오르는 길에서는 남창쪽으로 길게 뻗은 위봉과 투구봉에 이르는 늘씬한 능선을 볼 수 있다. 『죽미기』에서는 백운대를 백운교라고도 칭했으며, 현재 해남 사람들은 여기를 구름다리라 부른다.

③만경대(萬景臺)

『대둔사지』에는 "현재 만경대의 터를 알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죽미기』에는 미황사의 창건설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대(臺) 아래 경전을 실은 석선(石船)이 와서 모래언덕에 이르렀다. 소가 누운 곳에 법장사(法藏寺)를 세우니 오백여년이요, 경전을 대둔사로 옮겨 들여와 보관하니, 또한 그 년 수를 알지 못하나, 경전이 흐트러지고 흙에 매몰되니 오늘에 이르러 경함(經函)을 넣은 상자가 썩고 헤어져서 보존된 것이 12개뿐이다."

실제 답사에서도 만경대를 찾을 수 없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그리고 대둔사에 보관되었다는 12개의 경함이 정말로 있었는지도 확인 할 길이 없다.

④봉황대(鳳凰臺)

『대둔사지』에는 봉황대가 "만일암의 왼쪽 수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지에는 만일암터의 좌측으로 기록하고 하였으나, 이는 잘못된 기록인 듯 하며, 실제로는 만일암터의 우측편에 있다. 봉황대는 가련봉의 능허대에서 흘러내린 맥이다. 여기에는 샘이 두 군데 있고, 샘 바로 아래에 계조암터가 있다.

⑤극락대(極樂臺)

『대둔사지』에는 극락대가 "북암의 왼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북암의 좌측 바위를 말하고, 이곳에는 최근 복원한 3층 석탑이 있다. 이 3층석탑은 북암의 동탑에 해당된다. 최근 복원하면서 드러난 지대석이 마치 부처님의 손바닥처럼 생겨서 관심을 끌었다.

3층석탑 뒤편에는 수도하는 스님이 거처한 자그마한 집이 있다. 이 집의 앞마당을 지나면 평탄한 대(臺)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능허대, 가련봉, 도솔봉, 혈망봉, 향로봉의 아름다운 모습을 실필 수 있다.

⑥학사대(學射臺)

『대둔사지』에는 학사대가 "북암의 오른쪽에 있다"고 기록되었다.

북암의 우측 바위를 말하며, 바로 앞에 미륵마애불을 모신 용화전이 자리잡고 있다. 용화전의 뒤편 바위가 석사자와 동석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둔사지』에는 동석(動石)이 "북암의 뒤에 있으며, 한 사람이 밟아도 움직이지만 1천 사람이 굴려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석은 일반적으로 설악산의 '흔들바위'처럼 밀면 흔들릴것으로 믿고 있으나, 북암 뒤쪽에선 이런 바위를 찾을 수 엇다. 다만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이 왼쪽 바위가 마치 손으로 밀면 굴러 떨어질 듯한 모양을 하고 있기에 동석으로 추정한다. 용화전 쪽에서 바라보면, 석사자 왼쪽에 있는 바위이다. 『죽미기』에는 동석대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석사자는 『대둔사지』에 "현재는 어느 바위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아래여래좌상의 왼쪽으로 사자의 형상을 갖춘 바위가 있어서 석사자로 추정한다. 이 바위는 머리와 꼬리 부분이 완연한 사자의 형상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바위를 다듬은 흔적이 역력하다. 극락대에서 이 바위를 바라보면 영락없는 석사자의 모습이다.

석사자, 동석 바로 옆에 삼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석사자와 동석 바위 측면에는 오석으로 된 용화전 중수기가 붙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서인지 바위에는 많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대 아래로 '나미아미타불'이라는 글씨가 크게 새겨져 있다.

삼층석탑을 지나면 지은 지 얼마 안된 조립식 건물이 나타나고, 채마밭을 지나면 평탄한 바위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혈망봉, 오토령, 향로봉, 고계봉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그리고 멀리 진도가 보이는데-, 이곳의 일몰 또한 장관이다.

이곳에 마치 무릎자국 처럼 움푹 패인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고계봉 능선을 향해 활을 쏘는 장군의 무릎자국이라는 전설이 전해 온다.

⑦대장대(大藏臺)

『대둔사지』에는 대장대를 "도선암(導船庵)의 뒤에 있으며, 바위에 범자(梵字)가 새겨졌다. 그 밑의 바위가 배(船)의 모양과 같다"고 기록하였다.

대장대는 심적암터이 뒤편에 있는 큰 암벽을 말한다. 심적암터의 우측으로 약 15분 여쯤 오르면 이곳이 나타난다. 대장대 바로 아래편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암자 터가 있다.

암자 터의 아래쪽에 마치 배 모양을 한 바위가 있다.『죽미기』에는 "석선이 가는 곳을 가리켜서" 도선암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배가 향하고 있는 곳에 실제로 도선암터가 있다.
대장대의 바위에 새겨졌다는 범자는 오랜 세월로 마멸되었는지 찾을 길이 없다.

해남문화원 [대둔사의 역사와 문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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