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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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th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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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세불훼지지(萬世不毁之地)요,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의 풍수설

    서산대사가 임종 할 때 유언으로 남겼다는 '만세불훼지지(萬世不毁之地)요,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의 풍수설이다. 이 풍수설에 의하면, 두륜산은 "만년동안 깨어지지 않고, 세 가지 재앙이 닥치지 않을 곳"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곳에 터를 잡은 대둔사도 오랫도록 번성하리라는 풍수설이다. 대둔사가 어떤 재앙도 당하지 않고 선교양종의 종원으로써 역할을 수행한 것은 이런 풍수과 관련 있는 것으로 풀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 요요주행형으로 보는 풍수설

    대둔사의 터전을 요요주행형으로 보는 풍수설이다. 이 설에 따르면 대둔사는 '흔들리지 않고 가는 배의 형국', 즉 행주(行舟-배가 가는 형태)형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가련봉이 뱃머리이고, 가허루가 배의 중각 부분이며, 오도재가 배의 뒷부분에 해당된다. 배의 중간에 세워진 가허루는 배의 깃대를 세워야 할 곳에 자리잡은 건물인데, 그런 이유로 명칭을 한자로 '멍에 가(駕)'자를 썼으며, 이것을 누각처럼 공중에 뜨게 지었다는 것이다. 가련봉도 현재의 '迦'자가 아니라, 본래 '멍에 가(駕)'자를 썼는데, 가허루가 배의 중간부분에 해당되듯이 이곳은 뱃머리에 해당되기 대문에 '멍에 가'자를 썼다는 것이다.
    대둔사 경내에 우물을 만들 때 땅을 파지 않은 것도 행주형의 풍수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만약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 경우, 배 밑바박에 구멍이 나서 물이 들어와 배가 침몰하듯이 이 절도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행주형국의 풍수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속설들이다.

  • 가허루 호랑이바위 풍수설

    가허루는 향로봉에 있는 호랑이 바위풍수설과 관련되어 있다. 이 호랑이 바위는 천불전을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그 기운을 누르고 천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마치 멍에를 걸쳐놓은 것처럼 공중에 뜬 형태로 건물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가허루이다.
    가허루는 이처럼 행주형과 호랑이 바위 풍수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건물이다. 실제로 천불전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오도재의 허전한 공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만약 가허루가 없었다면 천불전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에 배치되는 형국이 된다. 굳이 풍수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남원에서 가허루가 공간 구성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차지하는지 짐작할 만 하다.

  • 남근(男根) 형국의 풍수설

    두륜봉에서 표충사로 뻗어 내려오는 능선은 툭 불거진 형세가 영락없이 남근의 형세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뿐안 아니라 이 남근의 정기가 모인 능선의 끝자락이 지금의 해탈문 입구의 좌측지점인데, 여기서 용수까지 솟아나오니 그 형국이 남근이 아니고 무었이랴! 현존하는 암자 중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절터들이 이 능선에 대부분 배치되어 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만일암을 비롯 남미륵암, 상원암, 진불암, 일지암, 은선암, 신월암, 그리고 대광명전과 표충사에 이르기 까지 대분분의 암자들이 이 능선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능선이 명당 자리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남근 형상의 끝머리를 마주 바라보느 암자가 여승들의 거주처인 청신암이네, 이것은 음양의 조화를 고려한 건물배치임이 분명하다. 대둔사가 이런 풍수형국을 가졌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힘센 장군들이 많이 배출된다고 한다.

    윤 고산은 대둔사에서 힘센 장군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이 은근히 걱정되어 그 기를 단절시키기 위한 비책을 썼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혈맥은 창으로 찌르고 삽으로 파냈고, 용수는 하인을 시켜 흙과 돌로 메워 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을 증명이나 하듯이 대광명전에서 일지암으로 올라가는 솟아나던 연못은 큰 돌로 메워져서 그 흔적마저 희미하다. 이런 전설은 아마도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시대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지위가 강화된 대둔사아 이 지역 명문 집안간의 대립과 마찰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

  • 무염지 방화 풍수설

    무염지

    무염지(無染池)가 향로봉의 화기를 막는다는 방화(防火)풍수설이다. 원래 대흥사는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지금의 무염지이고, 다른 하나는 무염지의 아래쪽에, 또 다른 연못은 해탈문 밖에 있었다고 한다. 해탈문 밖에 있는 연못은 앞에서 밝힌 용수이다.<

    무연지는 원래 네모모양(方形)의 연못이었는데, 박영희 주지 때 지금의 형태로 확장, 개축하였다고 한다. 본래 이 연못은 화재로 소실된 남우너 중창할 때 초의 선사가 조성했다는 이야기로 보아 방화 풍수설에 의해서 조성된 연못임에 확실하다.

    '무염지'라는 글씨는 당시 김종환(법호-경용) 선생이 바위에다 직접 써서 새긴 것이다. 무염지는 참선문구인 처염상정(연꽃은 물이 들지 않음0에서 따온 것으로 ' 더러운 것에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끟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무염지 아래에 있었던 다른 연못은 현재 메워지고 없다.

    무염지는 물이 땅 속에서 솟아난 게 아니라, 표충사 앞에 있는 장군수와 용화당 앞쪽이 샘물이 흘러서 모인 것이다. 이것은 연못이 자연적으로 조성된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음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여기에 왜 연못으 만들었을까?
    향로봉은 원래 화기가 넘치는 산이라고 한다. 이 산이 화기로 대둔사는 항상 회재의 위험을 안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이 같은 화재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 무염지를 조성한 것이다.

    무염지 이외에도 화기를 막기 위한 비보물을 대웅전 앞 축대와 청신암에서 진불암으로 가는 길 옆에도 시설하였다. 시설물은 대개 바위에 구멍을 뚫어서 물을 담아놓은 형태이다. 대웅전 앞 축대의 구멍은 현재 없어졌으나, 진불암으로 가는 길옆의 바위에 파진 구멍은 지금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런 비보책에도 불구하고, 대둔사는 두 번에 걸쳐 커다란 화재를 당했다. 1811년에느 ㄴ가허루, 천불전, 용화당 등의 남원이, 1899년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북원이 큰불로 소실되었는데, 이것은 향로봉의 화기로 이한 재앙이 아닐까?

  • 대웅전에 관한 풍수

    대둔사의 중신 전각인 대웅전은 소의 젖무덤에 세워졌다는 풍수설이다.풍수상 고계봉은 소가 누워서 되새김하고 있는 형국인데, 대웅전이 그 소의 젖무덤에, 그리고 지금의 유선여관가 마주보고 있는 백화암이 소의 음부에 해당된다고 한다. 현재 백화암이 비구승들의 수도처인 것도 이런 음양의 조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 같다.

  • 오룡쟁주(五龍爭珠)형이 풍수설

    천불전 뒤편에는 여의주 바위가 있다. 다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놓고 다투다가 떨어뜨렸는데, 그 여의주가 여의주 바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바위의 형상이 여의주와 꼭 닮았는데, 바위가 올라가서 보면 고계봉, 가련봉, 두륜봉, 도솔봉, 혈망봉, 향로봉 등 두륜산의 중심 봉우리가 모두 보여서 마치 다섯마리의용이 다툰 듯이 보인다고 한다. 현재 절에서는 이곳에 새로운 불사를 계획 중이라고 하니, 아마도 이런 풍수형국과 관련이 깊은 듯 하다.

해남문화원 [대둔사의 역사와 문화]중에서....

천년고찰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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